진화는 멈추었다 – 이타심이 생기기까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다, 이타적이다 등의 논의는 결국 생명 단계에서 이기적, 이타적 성격의 형성에 관여했다는 논리입니다. 다른 종에 대한 이기적 행동과 같은 종 내부의 이타적 행동은 진화 과정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또한 종들 간의 공생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생존 전략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기적 또는 이타적 행동이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이타적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좋은 통찰을 줄 것입니다.
진화를 멈추게 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는 이타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타심은 진화의 어느 시점에서 나타났을까요? 많은 이들은 이타심도 결국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게임 이론에서 적당한 이타심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온다는 계산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타심이 진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힘이며, 이것이 인간에게 도달함으로써 진화를 멈추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기심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기심은 우리가 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엄마의 배 속에서 태어나 몸을 떠나면서 홀로 삶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돌봐야 합니다. 처음에는 본능적인 울음에서 출발하지만, 이성적인 판단력이 발달하면서 계산이 빨라집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관심사인 이타심은 말 그대로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입니다. 이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책이 있으며, 유전자적 관점에서부터 난생동물이나 포유류 등의 연구에서도 이타심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생명 현상을 깊이 있게 생각해 봅시다. 생명 현상이 처음 시작된 것은 초기 지구에서였습니다. 당시 지구는 지금과 달리 대기, 바다, 땅의 구성 요소가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는 알 필요가 없지만, 생명이 우연히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여러 분자들이 만나서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과정이 계속 일어났고, 새로 생긴 분자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거나 다른 분자로 바뀌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습니다. 초기 지구는 이러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었겠죠. 단순한 분자와 원자들이 가득했을 겁니다. 그러다 우연히 조금 더 복잡한 분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분자가 그 당시 지구 환경에 잘 맞았다면 오랫동안 그 상태로 유지되었을 것입니다.
단원소나 이산화탄소 등의 간단한 분자부터 더 복잡한 분자까지 여러 분자가 기체나 액체 상태로 존재했습니다. 우연히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고분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0이지만, 지구는 수억 년의 시간 동안 끝없이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한 번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엔 확률 0인 사건도 일어날 수 있죠. 그렇게 수억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 번의 화학 반응이 발생해 자기 복제 기능을 갖춘 고분자가 생겼습니다. 그 분자가 복제한 분자를 만들기 위한 재료는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곧 그 고분자가 짧은 시간 안에 지구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복제 능력이 있고 주변에 필요한 재료가 바로 있으니,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으로 기하급수적으로 고분자의 세상으로 변화된 겁니다.
이런 화학 반응이 오랜 시간이 지나며 더 복잡한 자기 복제 분자가 만들어졌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화학 반응 중에 복제 기능은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복제 방법이 달라지면서 여러 종류의 복제가 가능한 고분자의 세계로 지구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시작입니다. 화학 반응은 맞지만, 복제 기능을 가진 고분자는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생명은 단순히 고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복제 기능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 복제란 생물학적 용어입니다. 화학적으로는 스스로 촉매 역할을 하여 같은 분자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구의 대기, 바다, 육지 구성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바뀌기 시작한 이후에 처음 발생했던 자기 복제 가능한 고분자는 다시 합성되더라도 퍼지지 못합니다. 이미 필요한 재료들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자기 복제 기능을 가진 고분자도 함께 변해야 합니다. 변화한 환경에 따라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면서 고분자의 형태와 종류도 다양해지고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단순한 것과 복잡한 고분자 간의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고분자만으로 스스로 복제했을 수도 있고, 여러 고분자가 협력해 복제 기능을 수행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분자들이 분업하기 시작했고, 다른 고분자를 자신의 확장에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생명은 지구에서 탄생했습니다. 한 번의 시작으로 더 복잡한 생명체가 만들어지면서, 지구 자체의 환경도 함께 변화시켰습니다. 현재 지구상의 생명체 중 어느 하나도 초기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 탄생을 설명한 이유는 생명의 특징인 ‘자기 복제’ 기능 때문입니다. 그래야 번식이 가능합니다. 번식이 가능해야만 새로운 개체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번식하지 않는 생명체를 상상해 보세요. 태어나서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데 번식할 능력이 없는 생명체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번식 과정은 진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번식을 위해선 진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번식하지 않는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은 0입니다.
‘번식’의 본질은 어미 개체는 사라지고 딸 세포가 개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개체가 분리되거나 오래 살 수 있지만, 수천 년을 사는 식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개체의 증식하는 세포는 수천 년 전의 세포와 다를 것입니다. 유전자 변이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체세포 분열이 일어나면서 세포가 달라지는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특수한 경우에서도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계속 만들어집니다. 한 개체가 수천 년을 살아도 이미 수천 년 전의 개체를 이루고 있던 원소들은 모두 대체되었고, 원형의 DNA조차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번식이라는 이 생명체 본질 활동은 종의 보존을 위한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종 전체의 이타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는 이후 생태계에서 다루겠지만, 우선 한 종 내부에서 번식이라는 행위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자신을 나누는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번식이 가능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지 않은 종은 이미 멸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번식은 생존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역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기적이게 되었을까요?
앞서 이기심은 우리가 홀로 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에는 번식을 통한 전체 종 보존이 깔려 있습니다. 홀로 살며 생존하는 것은 전체 종 보존을 위한 기본 전제가 되며, 같은 종 내부의 이기적인 행동은 무엇 때문일까요? 종끼리의 이기적인 행동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결론이 같은 맥락으로 귀결되지 않나요? 개미처럼 사회를 이루는 한 종의 특성이 집단 내부 역할을 확실하게 정하고, 서로 협력하고, 다른 집단 혹은 종과 싸우며 진화해온 것입니다. 결국 지구에서 생명의 시작과 현존하는 수많은 종이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이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복제에 대한 화학적 고찰
이타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분자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복잡한 분자를 의미하며, 복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복제 기능을 가진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요?
산소와 수소가 함께 있어도 자연적으로 물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물을 합성하려면 외부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전기 스파크를 통해 점화하면 폭발이 일어나면서 물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화학 반응은 외부 에너지가 가해지거나 특별한 조건이 갖춰져야 발생합니다. 1952년에 밀러와 유리의 실험은 이 과정을 통해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단순한 유기물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복제 가능한 고분자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이러스는 DNA 또는 RNA로 구성되어 있지만, 스스로 복제할 수 없어 숙주가 필요합니다.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는 바이러스보다 훨씬 단순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레고 블록을 원자라고 가정한다면,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는 자동차 레고 정도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이 합성하기도 어렵고 분해하기도 어려운 안정한 화합물인 것처럼, 자기복제 고분자도 최초에 쉽게 합성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가 수억 년 동안 존재하는 가운데, 결국 합성될 확률이 0에 가까웠던 자기복제 고분자가 단 한 번 발생했고, 그 고분자가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었습니다.
화학 용어로 표현하면,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는 자기 촉매 기능을 가진 화합물입니다. 이 화합물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며 스스로 촉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지구의 생명이 외계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석에 생명의 씨앗인 자기복제 고분자가 담겨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행성의 생명체 일부를 담은 운석이 지구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해당 운석이 그 행성의 초기 생명 발생 당시의 물질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생명체가 초기 지구로 간다고 가정할 때, 그 생명체의 DNA나 RNA가 생명 발생의 시초가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럴 확률은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가 발생할 확률보다도 낮을 것입니다.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은 현재 지구 환경에 적응된 복잡한 생명체입니다. 이러한 단세포 생물이 초기 지구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시 지구의 대기, 해양, 온도는 현재와 매우 달랐고, 산소 호흡에 의존하는 아메바는 이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아메바 내부의 물질들은 구조가 복잡해,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는 단순한 RNA나 단백질 분자 구조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단세포 생물이나 그 구성 성분이 초기 지구에서 생존하거나 최초의 자기복제 고분자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지구의 최초 자기복제 고분자는 외계에서 왔을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상당히 복잡한 자기 촉매 기능을 가진 분자 구조를 통해 합성되었을 것입니다.